2025년 4월 4일
오피니언에세이 푸바오 송환, 슬픔마저 조롱당한 날

[공감일기] 푸바오 송환, 슬픔마저 조롱당한 날

본 이미지는 AI를 활용해 생성되었습니다. | 출처: DALL·E, ChatGPT-4o

몇 달 전 푸바오가 한국을 떠나 중국으로 송환됐다. 푸바오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판다로,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으로의 반환이 결정되며 한국에서의 행복한 나날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그녀가 떠나는 날의 에버랜드는 마지막을 함께하고자 모인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유튜브 생중계로 이별의 순간을 본 나는 슬픔의 현장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그곳은 마치 전 국민의 사랑을 받은 유명 인사의 장례식장 같았다. 끊이지 않는 군중의 곡소리와 체면조차 차리지 못한 갈라진 목소리로 내뿜는 절규, 소극적인 성격 탓에 목소리는 내지 못하고 겨우 코를 훌쩍이며 나는 작은 소란 등의 집합이 영상 속 소리의 전부였다. 나는 평소 푸바오에 큰 관심이 없었기에 ‘이 정도로 슬플 일인가?’ 하는 의문을 품기도 했다. 대중들의 반응도 나와 어느 정도 비슷했다. 다른 점이라면 그들의 반응엔 의문이 아닌 반발과 불만이 지배적이었다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 세월호 사건 등 정작 슬퍼해야 할 국가적 참사에는 침묵하다가 고작 동물 한 마리가 중국으로 떠나는 일에는 인산인해가 될 정도로 ‘유난’을 떤다며 그들을 맘껏 조롱하고 헐뜯었다. SNS에는 푸바오와의 이별에 슬퍼하는 인터뷰이의 영상을 스크랩하여 눈물에 젖은 그녀의 얼굴이 못생겼다며 비웃고, 눈물을 삼키느라 갈라진 목소리를 우스꽝스럽게 반복 편집해 공유하기도 했다.

나는 그들의 반응에 화가 났다. 마치 슬픔에 총량이 정해진 양 말하고 있었다. 푸바오가 떠난 것에 눈물을 흘리면 중대한 참사에 쏟을 슬픔이 동나는 것처럼 실연에 빠진 이들을 훈계했다. 인생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 멍청한 동물 한 마리에 울고 절망하는 미련한 족속이라며 혀를 찬다. 그러나 누구나 실용적이지 않은, 보편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무의미한 것에 몰입하며 진심을 다할 때가 있다. 그것은 애니메이션의 캐릭터가 되기도, 드라마에 나오는 여주인공, 강아지, 고양이, 어쩌면 작은 장수풍뎅이가 되기도 한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3000원짜리 팔찌도 다시는 못 만나는 소중한 이가 준다면 어떤 것 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 된다.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죽음에 세상 떠나가라 눈물 흘리는 그를, 난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과 교감조차 할 수 없는, 겨우 손가락 한 개 크기의 장수풍뎅이 ‘붕붕이’의 죽음을 목격한 그의 슬픔을, 난 공감하지 못한다. 좋아하던 드라마의 끝이 해피 엔딩이 아닌 슬픈 결말인 것에 길길이 날뛰는 그녀의 아픔에, 난 함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을 얕잡아 보진 않는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찡그려진 얼굴을 촬영해 SNS에 올리진 않는다. 나 또한 영화를 보며 애착을 가지던 배역이 해피 엔딩을 만끽할 때면 소리 없는 미소를 짓기도, 어렸을 적 키웠던 식물의 죽음에 비련의 주인공인 양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타인의 슬픔에 조소를 날리는, 마치 자신들은 정당한 명분이 있는 슬픔만 경험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미웠다. 푸바오가 떠남에 슬퍼하는 그들의 ‘유난’은 당신들도 겪었던, 소소하지만 꽤 쓰린 슬픔이다.

그들은 그저 대나무를 뜯고, 구르기만 하는 푸바오를 보며 인생무상이다든가 하는 나름의 가르침을 얻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 수도 있다. 푸바오를 좋아하던 그녀와 대화할 구실이 되기도 한다. 살아가는 데에 하등 쓸모 없는 판다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달래주는 귀여운 손자, 손녀 역할을 톡톡이 했을 수도 있다.

삶에 도움이 안 되는 눈물이라고 해서 나무라선 안 된다. 우리는 그, 혹은 그녀가 겪는 슬픔의 무게를 가늠하지 못한다. 그가 직접 들었던, 봤던, 살로 닿았던, 씁쓸한 감각이 혀 끝을 감돌고, 덥지도 않은데 온 몸에 땀이 맺히는 고통을 그저 전해 들은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이는 결코 어렵지 않다. 그저 지나치기만 하면 된다. 그들의 ‘유난’을 본 뒤 ‘내가 군대에 있었을 때는…’, ‘사회생활 해보면…’하는 훈계 정도만 참아내면 된다. 여유가 된다면 그저 옆에 있어 주기만 하면 된다. 그 정도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