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한 사람의 자기 계발서나 격언엔 나답게 사는 사람들에 대한 예찬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와 반대로 자신의 본모습이 너무도 추하고 볼품없어 보여 감추는 것을 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도 진실함과 순수함을 강요하며, 숨기고 싶은 모습을 억지로 드러내게 하는 건 가혹합니다. 이 글은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이상과 볼품없는 자기 자신의 사이에서 고뇌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느지막이 일어난 아침. 알람을 맞추지 않은 채 몸이 원할 때 일어난 지는 햇수로 2년이 되어 간다. 고시원 침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몸을 움직일 때 마다 온 몸에 전해져 오는 매트리스 속 스프링의 탄성. 침대 광고처럼 몸이 빨려 들어 가는 듯한 푹신함 대신 고시원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것 치고는 이 정도면 괜찮지 않냐며 당당하게 주장하는 뻣뻣함이 나름의 매력이다. 침대 맞은편에 위치한 동그란 모양의 거울, 그 속에서 나와 눈을 맞추고 있는 남성의 얼굴을 바라본다. 며칠간 자르지 않아 각자의 속도로 자라나는 꼴사나운 수염, 전 날 먹고 잔 라면 탓에 팽팽해진 볼과 눈두덩이. 원인 모를 퀭한 얼굴빛은 음침한 분위기를 더한다. 몸을 일으키고 거울 위 서랍의 담배와 라이터를 챙겨 밖으로 향한다.
찬 겨울의 바람. 봄바람처럼 따스하지도, 꽃을 머금은 냄새 같은 온정도 없다. 그저 모든 것을 얼리는 데에만 집중하는 바람. 자신의 본분에 충실할 뿐인 바람. 입 속으로 뭉근하게 찬 연기를 폐로 넘긴다. 폐에 들어찬 연기가 적당해지면 숨을 고르며 내뱉는다. 눈의 힘이 서서히 풀려가고 몸은 나른해 진다. 200원의 가치를 가진 것 중 내게 가장 큰 행복을 줄 수 있는 수단이다. 순진해 보이는 얼굴 탓에 사람들의 무례한 언사를 견뎌야 할 때가 많았다. 나름의 반전을 주고자 시작한 담배지만 그들의 태도엔 달라진 부분이 없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나름 만족하고 있다. 시린 겨울에 몸 속으로 꾸역꾸역 넣는 연기는 소소한 안도를 준다. 담배는 내게 사소할지라도 늘 같은 양의 나른함과 낙관을 선물한다.
세상 그 어떤 사람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다시는 안 볼 것처럼 폭언을 날리고, 말로써 날 죽일 것처럼 상처를 줘놓고, 기분이 좋아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사랑을 주려 한다. 참 변덕스럽다. 담배가 주는 일관적인 소소한 행복을 사람들에게 기대할 순 없는 셈이다. 흡연으로 일찍 죽는다고 해도 괜찮다. 내 손으로 삶을 끝낼 만한 의지나 용기는 없지만 담배가 숨을 끊어준다면 못이기는 척 내 마지막을 내어주겠다.
타닥거리며 제 몸을 태워가는 한 개비. 그의 희생을 기리며 천천히, 그리고 깊게 연기를 머금고, 또 내뱉는다. 처음부터 삶에 의지가 없던 건 아니었다. 내게도 나름의 꿈이 있었고, 치기어린 로망이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숨길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음침하고 불완전한 내 속은 재채기처럼 불쑥 튀어나와 모든 걸 망쳤다. 난 하수구다. 누구라도 눈을 찌푸리게 되는 역한 냄새가 내 속에 풍긴다. 악취에 선악은 없다. 그저 본능적으로 피할 뿐이다. 무의식 중에 혐오감이 피어 오른다. 음식물 쓰레기 냄새에 표정을 찡그리는 사람을 비난하는 경우는 없다. 잘못은 더러운 음식물에 있기에. 처음 만나는 이들에게는 어떻게든 나와 다른, 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사람을 흉내를 내고 호감을 사지만 결국 발각된다. 작위적인 내 행동의 어색함을 알아차리고, 몸 안에 꽁꽁 숨겼던 역겨운 내면을 알아차린다.
어쩌면 인간 사회에 적합하지 않은 인간, ‘다자이 오사무’가 쓴 인간실격의 오바 요조를 능가하는 진정한 실격된 인간이 내가 아닐까. 내 본모습에 당연하게 얼굴을 찌푸릴 고상한 이들이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느니, 그 자체로 아름다운 존재라고 찬미하는 걸 견딜 수가 없다.
“앗뜨..”
생각에 잠겨 태우고 또 태운 내 사랑스러운 한 개비의 담배가 어느새 제 필터까지 내어 주고 있었다. 쥐고 있는 손가락에 열기가 느껴진다. 꽁초를 대충 바닥에 던지는 대신 조금 더 걸어 쓰레기통으로 향한다. 이 마저도 내 본모습을 감추고자 버릇처럼 들였던 가식이자 위선이었다. 조소가 입에 스친다. 다시 고시원으로 향한다. 담배를 피는 일 외에집 밖으로 나서는 일은 없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 곰팡이가 잔뜩 핀 내 깊은 통로 안까지 다다른 그들의 얼굴을 마주하는 끔찍한 경험과의 작별을 원한다. 다시 기대하는 일은 없다. 진짜 내 모습까지 보듬어 줄 수 있는 천사 같은 사람을 기대하는 건 과한 바람이다. 나부터도 나 같은 사람을 혐오하는데 누가 날 받아줄 수 있겠는가.
너만은 다를 줄 알았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숨기지 못했고, 넌 애써 찌푸린 얼굴을 펴고 다가가려 했지만 힘이 들어간 안면근육은 떨려 왔다. 경련이 일어나듯 부르르 떨리는 얼굴을 감추려 하는 게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웠지만 보내줘야만 했다. 네가 내게는 천사였기에, 모든 내면을 다 보듬어 줄 수 있다고 믿었던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앞으로는 누구에게도 기대할 수 없다. 이 사람이라면 다르겠지 하는 생각은 불가능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떠난 당신을 그리는 것, 너라면 괜찮겠지 하며 조금씩 어두운 본심을 꺼내 보인 날 저주하는 것뿐이다.